2023. 4. 12. - 2023. 4. 30.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남긴다⟫, 손수정 개인전
글 | 손수정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고 그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이다. 사람간의 관계 즉, 가족과 연인 또는 동물, 사물, 지위, 직업 등 어떠한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삶을 영위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사랑에 근간한다.
삶은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과 사랑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성질이 매우 비슷하다. 이 둘은 모두 추상적인 개념으로 작용한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을 말한다. 생명의 정의는 사람이 살아서 숨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 사물이 유지되는 일정한 기간이다. 사랑과 생명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비가시적이고 둘째, 물리적인 측정이 불가하다. 셋째,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요소이다. (단지 필수적인 요소인지, 살아가는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인지로 구분된다.) 마지막으로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통해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간의 관계에서의 사랑에 집중하며 사랑과 생명의 연관성을 나의 개인적인 서사를 기반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때 나의 기억을 매개체로 사용한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 나의 할아버지의 죽음은 생명의 부재로 인해 겪는 첫 이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참으로도 미묘했다. 더이상 어떠한 감각으로도 마주 할 수 없다는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이렇듯 나는 더이상 실존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존재 즉, 할아버지의 생명을 나의 기억을 통해 탐구하고 증명하고자 한다. 그 기억의 근간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있게 하였고 (본질적인 자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사랑으로 인해 할아버지의 생명이 진 이후에도 그의 생명과 사랑을 기억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직접적인 이미지로 드러내지 않는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과 같은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감각한다. 직접적인 이미지가 없는 것은 기억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고, 실체가 없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감상하도록 하여 할아버지의 실존을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탐구는 그의 생명과 존재에 대한 증명이자 나의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이 모든 탐구의 기반은 사랑이다. 이번 전시는 네 가지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고 이를 통해 생명을 감각하게 한다.
첫 번째 <Strata of Remembrance>는 조각회화 프로젝트이다. 판넬 위에 색상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올리고 조각하듯이 면을 긁어내어 묻혀있던 색상들을 드러낸다. 이는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억 속의 사물 혹은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조각 드로잉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각 드로잉한 색상들은 직접적인 이미지의 형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는 기억은 실체가 없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파편으로만 남는 것을 의미한다. 조각하는 행위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높낮이의 색상을 보며 시각적인 감상 뿐 아니라 촉각적인 일루전을 일으킨다.
두 번째 <A Living Thing>는 시각, 후각, 청각을 감각하게 하는 설치작품이다. 동그란 형태의 커다란 비닐이 축 처진 채 공중에 달려있다. 비닐 아래에 위치한 송풍기가 사운드가 재생되는 동안에만 작동하여 비닐 안을 공기로 가득 채운다. 사운드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는 송풍기도 작동하지 않아 비닐은 다시 축 처지게 된다. 사운드는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서술한 문장이 가나다순으로 재배치되어 한 음절씩 한 문장 단위로 재생된다.
이는 할아버지의 생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나의 기억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함과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얼마나 얇고 가볍게 느껴지는지 표현하였다. 시각적으로 볼 때 사람의 몸인 덩어리가 그 사람이라고 인식하지만 그 사람에게서 생명의 상징인 호흡이 사라지면 사람이 아니라 혐오적인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진정 살아있는 것은 가시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에 의하여 결부된다는 것임을 생각했다. 생명이란 호흡이 있는 동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 연약하고 비가시적인 속성을 비닐에 빗대어 표현하여 나의 기억을 통해 생명을 불어 넣는다. 할아버지의 기억의 문장들이 가나다 순으로 재배치 된 것은 기억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분해되고 재배치되어 명확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동시에 송풍기가 작동하며 어떠한 향이 함께 공간을 채우게 되는데 이는 할아버지와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의 향수를 일으키는 향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 <Continuum>는 입구가 세 개인 유연한 관이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덩어리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설치작품이자 인터렉티브 작품이다. 가운데의 입구는 유연한 관에 말을 하는 마이크의 역할이고 나머지 두 개의 입구는 말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스피커의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을 통해 할아버지와 나의 기억을 나 자신에게 들려줌으로써 할아버지의 존재를 회상할 뿐 아니라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을 하게 한다. 다른 감상자들 또한 타자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본인에게 들려줌으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회상하며 그의 생명을 증명할 수 있다. 본인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호흡이 귓가의 닿는 생경한 경험을 제시한다. 얼기설기한 오브제는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을 형태화한 것으로 이 작품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와 할아버지를 이어주고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말하는 이와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끊임없이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네 번째 <Inside Me>는 프리즘에 빛을 투과시켜 거울에 투영한 설치작품이다. 조명이 작은 프리즘을 비추고 그 빛은 프리즘을 통과하며 여러 색상으로 분산된다. 분산된 빛의 색상들이 거울에 부딪혀 맞은 편 벽에 투사된다.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매개체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거울을 통해 나의 외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갈래들을 마주하도록 한다. 빛은 나를 대신하는 소재로 사용되고, 프리즘을 통해 나온 여러 색상들은 나의 근원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무엇이 나를 구성하고,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제시한다. 나를 보면 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의 내면을 채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해 나를 알 수 있다.
할아버지의 생명을 증명하는 기반은 기억이고, 그 기억의 기반은 사랑이다. Living leaves love.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남긴다. 남기는 매개체는 기억이다. 생명과 사랑과 기억은 가시적인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인해 삶을 살아가고 수많은 동기를 부여 받는다.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남긴다. 사랑이 기억하게 하고 그 사랑이 살게 한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존재하고 유의미해진다.
나는 어떠한 사랑으로 살아가고 어떠한 사랑을 남길 것인가?
작가 손수정
손수정은 삶을 살아가며 당연히 여기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여 그것에 잠시나마 집중하여 생각하는 것이 예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며 그 끝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예술 언어로 표현한다.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설치와 회화가 결합된 복합적인 형태의 작업을 한다.
살아가는 것은 사랑을 남긴다 | 손수정 개인전
글 | 손수정
그래픽 디자인 | 김기태
전경 사진 | 허유
주최 | Pluripotent Art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