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UN KOO

  • 2023. 9. 14. - 9. 27.

    ⟪탈리신화(脫離神話)⟫, 구지언 개인전

    서문 | 김민선

    여기, 신(神)이 깃들지 않은 자가 그린 그림이 있다

    이 그림들에서 신은 무염수태(無染受胎)가 아닌 무성생식(無性生殖)을 봉정하고

    하나의 종(種)만을 우상화하지 말지어다 다양한 생물종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어머니의 자애로운 미소와 아버지의 위엄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신에게서 자신의 원형을 찾지 못한 자의 그림이다 

  • 구지언의 믿음은 신의 존재가 아닌 신화의 권력을 향해있다. 이 믿음은 그가 인간의 모습과 감정, 행위의 원류라 일컬어지는 신화에서 인간종으로서 자신의 원형을 찾는 데 실패한 경험에서 비롯하였다. 이 믿음은 신화적 알레고리가 지배하는 재현의 구조에서 다시 실패의 반복으로 강화되었다. 작가는 양성구유(兩性具有)의 몸을 훼손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영역을 구분하는 교리를 세워 사회구조와 견고한 결합을 이룬 신화에서 이탈을 시도한다. 그는 번역된 신의 음성이 아닌 원본을 직접 매개하는 트랜스 상태의 샤먼과 그에게(혹은 그가) 접속한 존재를 감각으로 공유하기 위해 제작한 제의 도구를 탐구한다.

  • <중성신中性神> 시리즈는 무신도(巫神圖)의 기원과 양식을 참고했다. 무신도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 강신무가 자신이 접신 한 몸주신의 초상을 직접 의뢰하면서 그려진다. 무신도는 불화를 그리는 금어(金魚)가 담당하여 의뢰인의 신관념과 불교, 무속신앙, 당대의 미술 양식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종교화로 구현됐다. 구지언은 예술가-연구가의 태도로 미술사, 종교, 생물종, 퀴어 등을 교차하여 다양한 관점의 자료를 수집해 그의 원형, 새로운 신, 어쩌면 지워진 신의 모습을 그린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으면서 무성생식(無性生殖)/단성생식(單性生殖)을 초월적인 힘으로 승격하고, 민트 대벌레, 흰개미, 가시덤불 등을 신의 형상으로 병치하며, 드랙 퍼포머의 포즈를 종교적 의미를 가진 도상으로 전환한다.

  • 작가는 새롭게 신격화된 이미지들을 그리기 위해 서양화에 기초하는 재료를 다루면서,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처럼 무신도에 있어서 기본색인 적·황·청색을 대신해 그만의 색 조합을 사용하지만, 무신도의 형식을 고수한다. 기성질서를 이루는 신화의 알레고리, 시각적 권위를 가지는 종교화라는 완결된 결과물을 완전함에서 배제된 대상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별개의 대상들이 화면 위에 절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권력 구조의 규제에 둘러싸인 채로 한정적인 자원 혹은 외부의 자원을 가지고 와 끊임없이 다듬어 서서히 ‘나’를 가능하게 하는 퀴어(한) 브리콜라주(bricolage)의 과정과 결을 같이 한다. 본래 한 점으로 이어져 괘불의 크기를 연상케 하는 <하늘과 땅의 우화> 역시 기존의 완결함이 가진 권위를 전이하여 구지언의 신관념을 확장한다. 중성신의 군상이 유연한 화합을 이루는 화면은 원형을 찾지 못하고 배회하는 자들을 적극 초대한다.

  • 이번 전시의 제목인 《탈리신화(脫離神話)》는 구지언의 사변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시된 권력을 현현하는 제의 도구로부터 신화를 분리하고, 배제된 존재의 재현으로 재구성한 신화를 제의 도구에 안착시켜 기존의 권위를 전이하는 작가의 방법론을 말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영문 제목으로 Post-(거부, 반작용)과 Neo-(새로운 부흥, 부활)이 아닌 Tal-을 임의로 Mythology에 붙인 것도, 신화와 제의 도구의 탈착 관계를 유희하는 과정을 강조하고자 했다. 전시는 플루리포텐트 아트 스페이스(PAS)와 스페이스 미라주(미라주)에서 동시에 진행되어 다양한 제의 도구와 그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감각과 정동을 제안한다.

  • PAS는 <중성신> 시리즈를 병풍처럼 모으고, <하늘과 땅의 우화: 땅>을 벽에 펼치며, <나리괴석도>와 제의가면 형태의 <초자아-흰개미>를 함께 전시한다. 미라주에서는 <하늘과 땅의 우화: 하늘>과 함께 제사상을 차리고, 사운드 디자인으로 협력한 장혜민의 음원을 재생하여 ‘탈리신당(脫離神堂)’의 모습을 갖춘다. 부디 두 전시장을 경유하여 탈리신화-탈리신당 그리고 그다음으로 향하고 있는 작가의 신화적 상상에 동참하여 완결된 이야기 구조에 균열을 만드는 여정을 함께하길 기대한다.

  • 작가 구지언 JIUN KOO

    작가는 성과 젠더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회화 작업을 통해 퀴어한 도상을 실험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사회적 성별이자 수행성을 지닌 젠더는 더 나은 사회적응을 위한 위장에서, 변신의 개념으로 연결되며 이는 새로운 시대의 ‘혼종’ 인간상으로, 더 나아가 ‘중성신(中性神)’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 저는 작업에서 전통 제의도구를 활용하여 기성질서를 강화하는 종교적 도상에서 벗어나는 회화 작업을 통해 퀴어한 도상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샤머니즘의 종교화인 무신도(巫神圖) 이미지를 차용하여 중성적 신의 형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신도라는 제의도구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동시에 신과 다양한 생물종의 교차를 통해 스스로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향 혹은 세계관을 SF와 같은 사변적 우화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가진 성별이분법적 젠더 관념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볼만한 지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 구지언의 작가노트 중 -

  • 탈리신화 | 구지언 개인전

    전시 기간 |  2023. 9. 14. - 9. 27. 

    관람 시간 | 수-일 1-7pm [월요일,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9길 30 지하 101호

    기획 | 김민선 

    글 | 김민선 

    그래픽 디자인 | 조은후

    사운드 디자인 | 장혜민

    전경 사진 | 허유

    주최/주관 | 구지언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도움 | 구유빈, 이지은, 태현영, 박예원, 진숙희, 강다영, 양벼리, 천예지, 최재원, 한윤아, 황은실, 남지인, 김지연, 방예은, 백필균, 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