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3. - 1. 26.
⟪회전하는 그림자⟫, 박주영 개인전
서문 | 김가원
시간이 만약 어떤 형상으로 존재한다면 또는 그럴 수 있다면 그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분명 시간 속에 살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시간을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시간은 멈춘 듯이 흐르고 없는 듯이 존재한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쪼개보려 노력하고 잡을 수 없는 시간을 저장하기 위해 부단히 추억하며 매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만약 시간을 멈출 수 있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삶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그토록 부단히 노력했을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흐르는 시간은 우리 삶의 전제와 조건이 된다는 점이다. 시작과 끝이 없는 우주의 순환적인 시간 속에서 인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삶의 의미가 발생한다. 박주영의 작업은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물이다.
박주영의 작품에는 익숙한 풍경인 듯하지만 아주 작은 단위의 ‘획’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 획은 나무였다가 때론 벽돌이었다가 때론 구름이었다가 연기가 되어 뭉쳐진 듯 다시 흩어진다. 삶을 시간의 축적으로 본 작가의 관점에서 하나의 획은 시간의 단위가 되기도 하고 삶의 조각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획은 우리의 삶이 그렇듯 하나의 상징물로 표현되지 않는다. 어떤 시간-획-들은 단단히 쌓인 건물처럼 견고히 내 삶을 지탱해 주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획-들은 잡지도 못한 채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박주영이 스스로 작품에 대해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여정의 결과”라고 표현한 것처럼, 박주영의 획은 본인의 삶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
이번 전시<회전하는 그림자>에서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아보며 잠시 멈추고 머무르는 계기를 갖는다. 앞선 작업들이 삶의 목적을 찾는 태도에서 밖을 향해 있었다면 이번 전시<회전하는 그림자>에서는 오히려 방향도 목적도 갖지 못한 솔직한 내면을 향한다. 시선은 한곳을 향하지 못한 채 하늘과 바닥이 겹치고 날아오르지 못한 획들이 서로 뒤엉키고 때론 응어리져 녹아내린다.
‘회전하는 그림자’, 그림자는 처음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해가 뜨고 달이 지며 반구 안에서 회전하는 그림자를 보며 인간은 처음 시간을 인식했다. 당시 회전하는 그림자는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시간의 또 다른 형상이었을까. 삶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잡히지 않는 시간처럼 내 삶의 그림자는 오늘도 내 발치를 잡고 따른다. 가끔은 앞만 보며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있는 내 발아래 그림자도 쳐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반짝이는 검은 눈이 별이 되기를 바라던 그 때가
어디론가 흐르다 피어올라 날아가 흩어지고
이내 신기루로 사라져 버린걸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담아내려는 바람은
그저 가벼운 뜬구름이 흩뿌린 비였는지.
실은 텅 비어있던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무섭게 굳어지는듯
웅크린 작은 박동과 얕은 호흡의 정적
후- 터지는 한숨의 여운에 흐릿해진 어둠과 흔들리고 부딪히는
맑고 다정한 빛이 조명하는 회전하는 그림자.
작가 박주영 JOOYOUNG PARK
박주영(b.1987)은 일상이 환기되는 순간을 회화적 시공간과 획(劃)의 조형언어, 중의적 의미의 바람(wind/wish)으로 표현한다. 나뭇가지, 잎, 연기, 구름, 그림자 등의 이미지를 빌린 획은 밝음과 어둠의 대비, 무채(無彩)와 유채(有彩)의 차이, 평면과 입체의 전환, 안과 밖의 역설, 실체와 허상의 반전, 시공간의 얽힘 등을 통한 경계의 흐트러트림으로 모순적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와 더불어 전통회화기법의 응용, 재료물성의 탐구와 함께 단순한 이미지 이상의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회전하는 그림자 | 박주영 개인전
전시 기간 | 2024. 1. 13. - 1. 26.
관람 시간 | 화-일 1-6pm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9길 30 지하 101호
서문 | 김가원
전경 사진 | 허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