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1. - 10. 31.
⟪LUMI-NET : The Tapestry of Nebular Threads⟫
루미-넷: 네뷸라의 실타래, 염기남 개인전
서문 | 김가원
빛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까?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물질적 특성이다. 우리가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감각할 수 있는⏤것들은 모두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물질의 특성으로 본 연장extension1 개념을 꼭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쉽게 구분한다. 물리적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을 물질이라고 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관적으로 ‘감각’이나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면, 다시 궁금증이 남는다. 빛은 물질인가 비물질인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빛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빛은 둘 다이다. 물질이면서도 비물질적인 특성을 갖는다.
1“철학자들이 흔히 연속량으로 부르는 양, 즉 길이, 넓이, 깊이를 지닌 양의 연장 혹은 양적인 것의 연장이다. 이것 속에서 나는 다양한 부분들을 셀 수 있고, 또 이런 부분들 각각에게 온갖 크기, 모양, 위치 및 장소 운동을, 또 이 운동에게 온갖 지속을 귀속시킬 수 있다.” 르네 데카르트, <성찰>, 이현복 역, 서울: (주)문예출판사, 1997, p.91.
염기남은 이런 빛의 독특한 성질을 경험적 차원에서 감각한다. 그가 표현하는 빛은 때로 물질의 표면에 맞닿으며 맺는 관계 속에서 물질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감각되는 빛은 잠시 비추고 사라지는 만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더듬고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빛이 지나간 자리 그리고 그 순간을 경험하는 이의 내부에 새겨지고 사라지지 않는다.
염기남의 작업에서 닿을 듯 말 듯 교차하는 선들은 “빛과 물질이 만나 생겨나는 미묘한 파동2”이 일으킨 순간의 감정들, 기억들, 그 너머의 시간들이 쌓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새겨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스퀴지로 밀어내고 덮기를 반복하는데, 염기남은 이 과정에서 “마치 밀물과 썰물이 서로 교차하며 형성된 패턴처럼, 물질의 표면 위에 새로운 결을 남긴다3”라고 말했다.
2 “빛과 물질이 만나 생겨나는 미묘한 파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염기남의 작가 노트 중 직접 인용
3 “밀고 덮어내는 과정은 마치 밀물과 썰물이 서로 교차하며 형성된 패턴처럼, 물질의 표면 위에 새로운 결을 남긴다. 이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자연의 흐름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그 안에 감춰진 세밀한 흔적들이 희미하게 서서히 드러난다.” 염기남의 작가 노트 중 직접 인용
이번 전시 <LUMI-NET>에서 이 결들은 하나의 흔적을 넘어 서로 중첩되고 교차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시에서 확장된 빛, 교차된 선의 모습은 오히려 시간성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빛은 시간에 따라 흐르지 않는다. 그 자체로 절대적인⏤우주에서 가장 빠른⏤상태로 있을 뿐이다.염기남에게 역시 빛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감각되는 빛은 시공간 속에서 물질을 만나 결을 남기지만 새겨진 결, 선들은 다시 축적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간을 초월한 순환성을 갖는다. 이 유기적인 순환은 끊임없이 우리와 세계를 관계시키며 미묘한 변화를 이끈다.
염기남의 빛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언가를 이끄는 힘, 일종의 추동하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리가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를 살피고 더듬는 순환 속에 우리가 비춰지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꼭 자연⏤태양⏤의 빛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인공의 빛은 다양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다. 가로등, CCTV, 네온사인 등 빛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날 없어서는 안 될 각종 디지털 기기까지 정말 수많은 매체에서 빛은 사용된다. 이 역시도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거나 유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빛에 이끌린다.
이번 전시 제목 <LUMI-NET>은 빛을 나타내는 라틴어 ‘Lumi-[lumen]’와 연결망을 뜻하는 ‘Net’을 붙여 만든 합성어이다. 염기남은 이 제목의 의미를 부제를 통해 설명한다. 부제 ‘The Tapestry of Nebular Threads’는 직역하면 ‘성운의 실타래로 역은 태피스트리’라는 뜻으로, 자신의 작업 과정을 빛과 선, 물질과 비물질, 시간과 공간, 감각과 기억 등 서로 교차하는 것들을 직조하여 만들어가는 태피스트리에 비유했다.
<LUMI-NET>은 가상의 세계 ’Lumi-Net’이 실제 공간에 구현된 것으로, 전시장 속 작품들은 마치 심연을 떠도는 먼지처럼 공간을 가득 메운다. 각 작품들은 개별적인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관계망network을 이룬다. 실제로 성운은 우주의 다양한 물질이 모여 빛을 반사하거나 방출하여 암흑 같은 우주에서 찬란한 색구름의 형상을 띤다. 염기남은 자신만의 성운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의 삶 전체가 스스로 경험하며 새겨진 수많은 색의 씨실과 날실로 그려나가는 한 폭의 그림이자 우주인 것은 아닐까. 그중 염기남에게는 빛과 물질 그리고 선이 있다.
작가 염기남 GINAM YEOM
염기남(b.1995)은 빛과 물질의 관계를 탐구하며, 신체에 내재된 감각의 경험을 통해 숨겨진 서정성을 발견하고 이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데 집중한다.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회화 작업을 기반으로 아크릴과 물질성을 강조한 재료를 활용하여 반복적인 레이어와 패턴을 통해 연속적으로 순환하는 자연의 흐름과 연결된 감각적 경험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빛이 물질과 상호작용하며 생성하는 미세한 결을 감지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감각적 경험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작업을 진행할 때 아크릴 물감을 얇게 올린 후, 스퀴지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밀어내는 과정을 통해 표면의 질감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왁스와 돌가루 같은 물질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새로운 층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물질들은 마치 자연의 지층이 형성되듯, 서로 교차하며 침투한다. 각 층은 단순히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히며 시간의 흔적을 새긴다. 밀고 덮어내는 과정은 마치 밀물과 썰물이 서로 교차하며 형성된 패턴처럼, 물질의 표면 위에 새로운 결을 남긴다. 이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자연의 흐름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그 안에 감춰진 세밀한 흔적들이 희미하게 서서히 드러난다."
- 염기남의 작가 노트 중
LUMI-NET: The Tapestry of Nebular Threads | 염기남 개인전
전시 기간 | 2024. 10. 11. - 10. 31.
관람 시간 | 화-일 1-6pm
전시 장소 |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9길 30 지하 101호
서문 | 김가원
포스터 디자인 | PAS
사운드 디자인 | 박주성
전경 사진 | 허유
기획/주관 | 플루리포텐트 아트 스페이스
후원 | 서울문화재단